아득한 먼 옛날, 수원역에 내리면서 그 곁 간이식당의 유리창에 적힌 음식 메뉴를 우연히 보게 됐습니다. 그중 하나가



'삶은 달걀'
물론 'boiled egg'라는 뜻이었지만 문득 'life is an egg', 또는 'life is like an egg'처럼 읽혔습니다. 그렇게 떠오른 생뚱한 생각을 합리화하는 방편으로 엉뚱한 상상력을 좀더 끌어 보았습니다. 달걀.
요즘이야 농업이라는 말 앞에 '산업적'이라는 말이 붙고 (industrial farming), 시중에 파는 달걀이 알을 깨고 병아리로 부화하는 일은 더이상 일어나지 않지만, 그래도 달걀은 제게 여전히 경이로운 가능성, 혹은 잠재성으로 읽힙니다. 금방이라도 댤걀의 한켠으로 톡톡 작은 금이 가면서 발이 쏙 나오거나 어린 털 보슬보슬한 병아리 머리가 쑥 나올 것처럼 그림이 그려진다는 말이지요.
그런 그림과 연관해서 본다면 우리 삶은 과연 달걀과 닮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니 달걀 같기를 바랍니다. 내가 어떻게 미래를 그리고 얼마나 치열하게 정진하느냐에 따라 여전히 그 가능성이 열려있기를 바랍니다.
'삶은 달걀'의 상상에 또 한번 곁가지를 쳐보니 두 살바기 둘째 아들의 달걀 사랑이 떠오릅니다. 삶은 달걀을 어찌나 잘 먹는지 때로는 살짝 걱정이 될 정도입니다. "에끄, 에끄으~!" 하고 소리소리 지르면서, 삶은 달걀을 내놓으라고 성화입니다. 그렇게 삶은 달걀을 좋아하는 아들을 행복하게 해주자면 제가 더 열심히 일해서 부지런히 돈을 벌어야겠고, 그런 면에서 보더라도 삶은 달걀, 아니 삶은 삶은 달걀이 되는군요.
금요일 아침의 엉뚱한 상상이었습니다. 지금 창밖으로는 폭설이 퍼붓고 있습니다. 오늘 저녁때가지 20 cm 쯤 쌓일 거라는 일기예보입니다. 앨버타주의 혹독한 겨울이 이제 막 시작되었습니다.
사족: 구글에다 물어봤습니다. 삶이 뭐냐고... 검색창에다 'Life is" 까지만 치면 검색어 자동완성 기법에 따라서 죽 목록이 나옵니다. 개중에는 '삶은 한 박스의 초콜렛과 같다'라는 맛깔스러운 표현도 눈에 띕니다. 삶은 무엇일까, 우리가 이 세상을 사는 의미는 무엇일까, 두고두고, 또 자주 물어보고 싶습니다.








